범패를 위시하여 불교의식에 쓰였던 여러 음악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구체적인 음악의 종류 및 성격에 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고대 불화나 석조물의 도상에 보이는 악기를 비롯하여 불교문헌에 보이는 음악 관련 기록을 통해 범패와 같은 형태의 불교 음악이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중국으
민속음악은 인류의 방대하고 위대한 문화유산의 일부이다. 세계인들은 이제 자민족 중심주의의 일환으로서 민속음악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타민족에 대한 이해를 위해 민속음악을 접한다. 세계문화를 만날 때 음악을 통하게 되면 그 문화의 지성적인 내용을 감성적인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흡수해
범패에는 익숙지 못합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인연이 닿는 중으로 맞아들이었으니 비록 향가를 써도 좋다. 월명사는 곧 도솔가를 지어 읊었다. 그 가사에 이르기를 『(가사 원문)』라고 하였다. 龍樓此日散花歌(용루차일선화사)/挑送靑雲一片花(도송청운일편화)/鄭重直心之所使(정중직심지소사)/
범패(梵唄)는 잘 모릅니다.” 그러자 왕은 “이미 인연이 있는 승려로 지목되었으니 향가를 불러도 좋다”고 말했다. 이들 대화에서 국가적 의식은 불교식 범패를 부를 줄 아는 승려가 주관해야지 화랑에 속한 낭도승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삼국통일을 달성하는 데 주
일연(一然)의 기록을 통해서 입증되고 있고, 또 이 문다부재(文多不載)라 한 산화가(散花歌)는 이름이 전해오지 않는 타(他)의 인도승(引導僧) 혹은 어느 범패사에 의해서 창영되었음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문제는 산화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도솔가는 과연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