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1. 주제선정이유
19030년대라고 하면 대부분 우리는 일제치하의 암울한 시대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의 1930년대는 매우 화려했다. 서구의 문물이 대량으로 들어오고 서양식의 건축과 도시설계, 문화생활 뿐 만이 아니라, 패션들까지 매우 세련되고 다양한 시대였다. 자동차와 카페, 백화점
대중 인쇄매체를 통해서 본 ‘고향’
-잡지《신여성》과《별건곤》을 중심으로-
1. 들어가는 말
나에게는 명절 때가 되면 으레 찾아가는 고향이라고 할만한 시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을 볼 때나 라디오를 들을 때, 혹은 주변 사람들 과의 대화 속에서 ‘고향’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
별건곤에 수필 ‘천하명기 황진이’ 발표.
- 6월, 별건곤에 논설 ‘전문 지식을 갖추자’ 발표.
1930년
- 1월, 잡지 조선농민에 논설 ‘소작 농민의 각오’ 발표.
- 별건곤에 수필 ‘남모르는 나의 아들’ 발표
1931년
- 6월, 잡지 불교를 인수하여 사장으로 취임. 다수의 논설 발표.
1932년
- 1월, 조선일
별건곤’이라는 잡지의 3월호에서만 채만식의 필명으로 담긴 글이 7편이라는 점에서 대표될 수 있는 것처럼, 채만식 스스로 잡지의 편집을 맡고 직접 글을 써내면서 편집자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개벽사에서 발간하던 ‘혜성’, ‘제일선’, ‘신여성’, ‘어린이’ 등의 잡
별건곤』제24호(1929.12.1) ‘팔도명식물 예찬(八道名食物禮讚)’이라는 기사에 경상도명물 진주 비빔밥을 소개
손정규의 『우리음식』(1948) - 여러 재료를 밥과 함께 비빈다음그릇에 담고 다시 그 위에 고명을 올리는 조리법 소개
황혜성의 『한국요리 백과사전』(1976) - ‘궁중음식편’에서 ‘비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