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제5세대 영화감독
문혁기간동안 폐교했던 베이징영화학교가 1978년 다시 문을 열고 1982년데 졸업하고 그 이듬해 1983년부터 영화계에 등단한 감독군을 5세대라 칭한다. 중국영화의 세대론이란 사실 1980년대 초 5세대가 하나의 고유명사로 널리 통용됨과 더불어 1980년대 대륙영화계에서는 그들의 예
교육에 사용되었다. 모범극에서 대중들은 혁명영웅을 과시하기 위한 배경으로 묘사되고 혁명영웅은 극도로 신격화되었다. 이러한 기형적인 역사적 산물을 낳은 문혁 시기는 1976년 막을 내렸다. 바야흐로 중국 사회는 문혁의 암영 속에서 벗어나면서 시대가 바뀌는 역사적인 출발점 앞에 서게 되었다.
중국 전역에 전개했던 내란이었다. 이 시기 동안 대부분의 영화들은 불과 몇 편의 전쟁영화를 제외하고 이유 없이 공개적인 비판과 상영금지 처분을 받아야 했다. 또한 대부분의 영화 제작사들은 폐쇄되었으며 감독, 배우 등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동원되어 정치적인 재교육이라는 미명
중국 전역에 전개했던 내란이었다. 이 시기 동안 대부분의 영화들은 불과 몇 편의 전쟁영화를 제외하고 이유 없이 공개적인 비판과 상영금지 처분을 받아야 했다. 또한 대부분의 영화 제작사들은 폐쇄되었으며 감독, 배우 등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동원되어 정치적인 재교육이라는 미명
있는 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992년 <현 위의 인생>에서 중국 대륙의 아름다움과 중국인의 심적 세계를 그렸다. 이때부터 천카이거는 형식미에 눈뜨며, 주제와 함께 독특한 스타일의 영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그런 징후가 특히 강하게 나타난 것이 칸느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패왕별희>(199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