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16세기에 당시풍(唐詩風)이 시단을 풍미하였던 것에 대한 비판으로 17세기 초에는 명대(明代)의 진한고문풍(秦漢古文風)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 풍조 역시 당송고문론(唐宋古文論)이 제기되면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주로 노론계(老論系) 문인들에 의해 당시(唐詩)는 물론
문학적 성과를 이룩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문학 담당층의 성격이 변모되어 고려 전기의 귀족적인 문학, 사장풍(詞章風) 중심의 문학 현상에 대한 비판과 사회의 현상을 사실적으로 반영하려는 독특한 문학 풍토가 조성되었다. 특히, 이규보는 이러한 고려 중기의 문학적 전환을 담당한 대표적인 인물로
1) 이규보의 삶
1년 만에 복직하여 요직을 두루 역임함
→ 완전히 삭탈관직, 귀양
→ 복직, 본격적인 문필활동(대부분의 외교 문서 작성)
→ 70세, 금자광록대부 수태보문하시랑평장사 수문전태학사 감수국사 판예부사 한림원사 태자태보(隨太保門下侍郞平章事 修文殿大學士 監修國史 判禮部事 翰林
제1장 중국문학사의 배경
중국문학은 한민족을 중심으로 구축된 긴 역사를 가지며, 그 역사의 장구함과 문헌의 풍부함에서 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중국문학의 언어, 즉 한어(漢語)는 원래 단음절어이며, 1어가 1음절 ·1개념을 나타내고 1문자로 표기된다. 그 문자 즉, 한자도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
문학적 접근ㆍ민속학적 접근 그리고 中國의 講唱文學의 영향설 인권한 《판소리 唱者와 失傳 辭說 硏究》집문당, 서울, 2002년, 15쪽
이 提示된 바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 역시 단지 가정에 의한 추측일 뿐 누구도 정확한 結論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연구에서도 影向이란 중요한 요소이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