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은 사회경제적 배경과 일본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에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시는 개국에 의한 내외의 위기 속에서 봉건체제의 재편권력으로서 등장한 유신정권이, 절대주의로서의 천황제 국가기구를 형성해간 시기임과 동시에 그 재정적․경제적 기초를 재편
부국강병의 기치하에 구미 근대국가를 모델로, 국민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관주도의 일방적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강화에 노력하여 새 시대를 열었다. 이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적 통일국가가 형성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 ·문화
)에서 한 말이다. 김옥균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에게 변혁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급진적인 정치개혁을 시도한 선구자로 평가된다. 개화사상의 주도자이자 갑오개혁의 선도자로서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추구했던 김옥균의 정치와 사상을 김옥균의 일생과 관련하여 조명해보고자 한다.
부국의 정책임도 강조하고 있다. 그의 ‘부국’은 단순히 국가의 부가 아니라 백성의 부, 즉 전체의 공존을 위한 ‘부’의 추구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단순히 특정 집단을 위한 ‘부’의 추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부’의 추구, 즉 임금 자신의 ‘부국강병’을 통한 강력한 통일 제국의 건설이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산업들이 중시되었다. 이에 따라 농업과 관련된 부분과 부국강병에 대한 실천학문의 발전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과학의 발전은 오로지 실천적, 실용적 측면에 집중되어있었기에 대부분이 자료의 수집을 통한 통계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 내면에 있는 이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