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선교사로 임명하였으나 한국에서 선교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하여 우선 일본에서 한국말을 배우도록하고 그 이듬해인 1885년 6월에야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중국 상해에서 의료선교사로 일하던 호레이스 알렌 (Horace N.Allen)이 한국선교의 뜻을 품고 미국의 장로교선교부에 한국선교사로
장로교는 선교사들로부터 교회의 치리권을 넘겨받았다. 감리교는 남북선교부 아래 있던 교회들이 1930년 하나의 감리교회로 출발하면서 한국인 감독이 치리하는 교회로 출발하게 되었다. 1915년부터 감리교는 신학교육에 한국인 교수가 참여했고, 장로교는 30년대 초부터 참여했다. 초대 선교사들의 선
독일 태생의 역사가 필립 샤프( Philip Schaff)는 19세기 중반 미국의 종교를 평가하면서, 장로교가 “의심의 여지없이 , 가장 수가 많고, 존경할 만하며, 가치 있고 , 지적이며, 영향력이 있는 교단 중의 하나이며, 특별히 견실한 중산층에 강력한 거점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내 여타 개신교 교
Ⅰ. 천주교의 전래
천주교 전래를 통해서 수용된 서양철학의 전체적인 내용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의 중세철학이다. 그리고 이 중세철학은 기독교신학과 그리스철학의 종합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성격을 지닌 중세의 서양철학이 천주교의 전래를 통해서 고스
장로교에서도 기존의 장로교 체제로 환원하려는 움직임이 노골화되면서 지방에서 노회를 재건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결국 1945년 11월 경남노회가 재건되었고 12월에는 전북노회가 재건되었다.
통일의 여망 때문에 남한교회만의 조직인 남부대회가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도 어려웠다.
해방 직후 월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