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북제· 북주 양식의 성립
북제·북주기에 들어오면 북위 후기 양식의 구조를 완전히 탈피하여 신체 표현부터 세부모티브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조형성을 나타내는 불상이 많이 출현한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북제·북주의 불상은 사천성 성도 만불사지에서 출토된 양梁 군상(529)처럼 동남
북주는 선비족의 국가이고 양씨의 수나라는 한왕조라고 구분하는 데는 사실상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5호의 중국진출로 시작된 북방민족의 한민족화는 북위 효문제의 한화정책으로 선비족의 한인화는 상당히 추진되었다. 특히 선비황실의 한인황후 책봉으로 북위 이래 한인과의 혼혈왕자가 다수를 차
1. <남조> 성도 만불사지 출토 군상의 양식(梁, 6세기 전반, 사천성 전통관)
성도 만불사지로부터 출토된 불상은 대좌로 추정되는 원통형 석재의 둘레에 높은 돋을새김으로 복수의 존상을 표현하고 각각의 존상 사이에 그보다 작은 공양자상(供養者像)을 둘러세운 매우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
균전제는 북위 효문제 태화 9년(485)에 창제되어 당의 수취체제인 조․용․조가 붕괴되고 양세법이 발포되기까지 시간적으로는 5세기말에서 8세기말에 걸쳐 300여년간 시행된 중요한 토지제도이다. 균전제는 북위․북제․수․당 각 시대의 사회상에 부합되면서 정비․발전되어 당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