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의 증축
a. 증축 과정
이후 효종은 임진왜란 때 도성을 적에게 내어준 것과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저항하다가 치욕적인 항복을 당한 역사에서 북벌계획을 구상하였으나, 그가 재위 10년 만에 세상을 떠나 그 계획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 후 숙종 즉위년(1674)에 북한산성을 축성하자는
조선시대 16대 인조2(1624)년에 설치한 군영 . 내ㆍ외 두영(塋)으로 나누어 광주ㆍ양주ㆍ수원 등 의 진(鎭)의 군무를 맡았다가, 영조23(1747)년에 경리청을 대신 하여 북한산성의 수비를 맡음
훈련도감을 줄여
국가 재정도
충실히 하고
수도 방어의 군사력도 확보한다는 뜻에서
북한산은 계절별로 봄에는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며 공원 전체를 동화 속의 나라로 바꾸어놓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과 그 밑을 흐르는 계곡에서 잠시 쉬고 있노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정도이다.
또한 삼국 시대 이래 과거 2천년 역사가 담긴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100여 개의 사
지력을 극히 악화시키며 화학비료의 계속적인 사용으로 토양의 산성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ⅲ)보수유지의 국가비용 과다요구
계속적인 비료 사용량으로 토양산업화 뿐만 아니라 생산원가가 상승된다. 그리고 유실되는 토양이 관개수로에 퇴적되어 수로정비를 위한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