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도와 황해도 지역에서는 좌우간의 충돌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그러나 우익 지도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각 지방에서 화합과 갈등 속에서 건국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10월 8일 평양에서 5도 인민위원회 연합회의가 개최되었고, 결과 각 지방의 인민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이북 5도의 행정이 통
북한의 민족과,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어렵게 생존하고 있는 남한은 대립항쟁을 함으로서 외교․ 군사적 과다지출로 인한 전체 민족적 자산과 생산력이 낭비․ 탕진되고 있다, 우리는 통일을 함으로서 민족의 자산과 생산력이 전체 민족사회의 발전과 세계평화의 이바지하는데 쓰이도록 해야 한
북한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갈등과 대립 일변도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미․소를 중심으로 하는 동서간의 양극적 냉전구조가 한반도를 지배하는 가운데, 북한은 오직 무력혁명에 의한 대남적화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고, 남한은 엄격한 반공정책을 근간으로 하는 「할슈타인 원칙」 할
북한과 미국의 대립에서 제 2의 한국 전쟁이 발발할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분단이 이루어졌고, 해방 후에 등장한 미군정 통치 하에서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국내 사회 세력들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남한 단독 정부의 수립이 이루어 졌는지를 살펴보고, 또 분단이 더
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미∙소 양국은 자신들의 국가적 이익을 앞세워 한반도를 분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우리 한민족 내부에서 좌익과 우익 간에 각기 다른 이념적 대립으로 인해 남한과 북한 지역이 분단될 수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