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마한 사회의 지배 세력
마한의 정치적 성격을 생각할 때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마한을 구성한 기본단위는 소국이었다는 점이다. 이 소국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립 시기나 성립주체를 달리 하면서 각처에 산재하여 있었고 이들은 맹주세력을 중심으로 연맹체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묘에 들어가는 길)이 딸려 있고, 널길 입구에는 돌짐승(鎭墓獸;진묘수)와 지석(買地券;매지권)을 두는 등 중국 6조(六朝)의 묘제를 따르고 있다. 공주지방 고분의 특색은 백제의 독자적 형식을 갖고 발전하고 있으며, 돌방무덤도 처음의 사각형 합장묘에서 직사각형 홑무덤으로 바뀌어 간다. 부여와 전라
묘․토광묘 및 각종 청동기류가 조양동․평동을 비롯한 경주시 일원에서 출토되고 있어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斯盧國)의 발전과정을 잘 보여준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금성, 월성, 계림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궁궐, 관청, 시장, 사원 등이 들어서면서 도시로서 한층 발전하였다. 경주는 신
옹관묘 또는 독무덤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무덤쓰기의 한 방식으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옹관 또는 독널이란 일반적으로 사람의 시체 즉 주검이나 뼈를 묻은 토기를 말하고 있다. 처음에는 크기가 크지 않았으므로 주로 어린아이의 주검을 묻는데 쓰였다. 옹관묘의 시작은
분구묘는 대형지역집단의 수장묘인 것으로 보이며, 이는 집단내에서 신분의 차이가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 일본열도를 왜, 왜국이라고 불렀다. 대형지역집단 중에는 중국과 교류를 하였던 지역집단도 있었고, 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나라로 인식했다. 기원전후를 기준으로 100년을 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