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발생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역사의 오랜 시간에 걸쳐 인종, 민족, 종교적인 요인들로 인해 서로간 싸움을 일삼던 분쟁 그룹들의 감정의 골은 여러 화해의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주었던 피해에 대한 분노와, 그 속에서 죽어간 목숨들에 대
국가의 발전보다 앞세우게 되었다. 더구나 왕권의 성립이나 승계방식이 왕왕 왕족이나 지배층사이의 잔인한 무력투쟁에 의존했기 때문에 개인의 권력욕 충족을 위해서는 국가나 민족은 아랑곳없이 무자비한 피의 투쟁을 서슴지 않게 되었다. 이 같은 폐풍은 이미 이성계 자신의 아들들 사이에서부터
코소보사태에는 무력개입을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아프리카 대부분의 분쟁에는 수수방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하여 문화인류학자들은 주류문화에 의한 소수문화의 '융합'이 아닌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다문화주의를 민족 간 화합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치 분야에서 인권보호의 정치적 맥락을 다루어 보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는 인권의 동태적 혹은 정치적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권문제 연구를 정태적인 국제규범의 차원으로부터 국제정치의 현실적 문제 영역으로 발전시키는 성과를 가져왔다. 그는 인권레짐을 규범과 규칙, 국제적 의사결정행위의
민족이 복잡하게 얽혀 살며 거대한민족의 모자이크를 만들었다.
동 분쟁은 발칸반도의 여타 분쟁과 같이 민족 간의 갈등으로 야기된 분쟁으로서 알바니아의 분리 독립운동에 대해 세르비아가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시작되었다.
코소보는 신 유고연방 세르비아공화국에 속해있으며 주민의 90%가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