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한국사에서 7세기 후반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시기의 하나이다. 신라와 당의 연합에 의한 660년의 백제 멸망과 668년의 고구려 멸망, 676년 당 세력의 축출과 698년 고구려 고지에서 발해의 건국 등 일련의 연대기적 사실이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후대의 역사인식은 ‘신라의 삼
이승만의 유년시절...
이승만은 한참 나라가 혼란스러웠을 때인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양녕대군의 자손으로 가문을 자랑하는 집안의 6대 독자로 태어났다. 뼈대있는 집안이라고는 하나 그의 조상들은 이미 오랫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했고 권력과 재부가 동일시 되던 나라에서 그의 집안은 가난할
통일론’을 주창하며 당시 국가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정면 대응했던 그의 사상적 당당함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결국 이른바 ‘법살(法殺)’이라 일컫는 재판을 통해 서대문 형무소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 그의 행적의 바탕이 되어 주었던 사상의 뿌리와 그 가지들에 대해
통일론』청문각, 2002, p.22, 재인용.)
둘째, 활동적 측면에서 NGO는 외형상 시민단체지만 궁극적으로 공적인 활동을 하는 조직의 성격을 띄어야한다. K. D. McCarthy, V. Hodgkinson, and R. Sumariwalla(eds.)(1992), The Nonprofit Sector in the United States, San Francisco, CA: Jossey-Bass ; Lester M, Salamon and Helmut K.Anheier(1994), The Emerging Sector:
통일론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근거한다. 김부식이 ‘사대주의적 관점’에서 민족사의 범위를 좁혀 ‘삼국통일’이라 했지만, 본래 ‘삼한통일’ 뿐이었다면 오히려 민족사의 범위를 넓혔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통일신라’가 고구려까지 병합했다기에는 문제가 있다. 신라가 “대동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