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와 ‘불안’에 대하여
교수 이어령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에 다른 신의 습작물과 마찬가지로 의식을 의식할 줄 아는 재능이 없었다고 한다. 신은 다른 습작물(생물)들의 경우와 똑같이 인간을 창조해 놓고서도 역시 그것에 대하여 일정한 목적도 도덕도 부여하지 않았다. 이 서투른
허무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면서 집착하는 기술문명의 정교한 인공적인 사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또한 자신이 기술문명에서 훌륭한 인적 자원으로 인정받는 것이 헛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느낌을 '불안' 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불안은 우리가 예
허무와 무질서, 부조리속에서 불안과 고뇌를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개인의 체험적 상황에서는 실존에 대한 회의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허무감이나 부조리의 체험에 대한 문학과 철학에서의 반응을, 그러한 체험속에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실존주의라고 한다.
2) 실존주의의
불안이 더욱 심화되었다. 비극적 체험과 상흔은 생존의 어려움과 회의를 안겨 주었으며, 패배 의식과 허무주의를 심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렇나 시대 배경은 전쟁 체험, 현실 참여, 전통 지향 등의 주제로 문학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전후의 불안한 정치,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허무주의,
소설 속에서 ‘허무주의’를 통해 이 같은 비판의식을 형상화했던 것이다. 이 ‘허무주의’ 표출은 먼저 당대의 시대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간략히 언급했다시피 1960년대는 6.25전쟁의 후유증으로 빈곤과 생활고가 만연돼 있었고, 3.15부정선거 및 4.19, 5.16 등 정치적인 불안도 팽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