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떠나기만 하면 작전은 성공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으로 폴 번얀 작전의 지원부대로 현장에 투입되었던 한국군 특전사 64명이 도발행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계획과는 달리 공동경비구역 내에 있는 북한군 초소들을 부수었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에 있는
사건, 푸에블로 호 나포사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잠수함 침입사건, 수없이 일어난 방어선 침범 사건 등 군사적으로 긴장상태를 만드는 사건들이 많았다. 또한 이념적인 측면에서도 남북간의 갈등관계를 볼 수 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기본적인 이념이지만 북한은 사회주의
미국의 4성 장군이 임명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한미연합사령부 신설에 관한 각서'에 명기되어 있다.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여 주한미군의 합법성을 보장받으며 '합의 의사록'에 따라 한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장악하고 있다. 한미연합사령부의 기능은 ① 작전 지휘권을 행사
그것은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편가르기식의 외교를 펼치게 되면서 자신에게 편승하는 동맹국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목적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여 진다. 냉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직접적으로 전투를 행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 간의 견제와 대응 속에서 차가운 평화의 상태를 유지한 것을 말한다.
사건과 시민의 연대, 행정당국의 협력이 우리에게 교훈적이다. 이제 군사 안보를 명분으로 `인간 안보`가 유린당하는 현실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부차시하는 태도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국가안보의 궁극점은 인간안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