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피침략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통곡은 망해가는 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제 스스로를 위해서였던 것인데 금서용은 사대주의적 관점에서 이를 올바르게 해석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사대주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대의 교수들조차도 상당 수, 알기만 하면 누구나 선생은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암암리에 동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사범대학의 실제 교육과정을 같은 영역의 문리과대학 교육과정과 비교해 보면, 이런 사고방식을 그 저변에서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념이 아닌 선혁
사대주의’는 한국인의 자존심 자체를 훼손하므로써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의 한국인의 삶을 자기비하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마치 마약과도 같은 폐해를 낳고 있다. 조선사회에서 이해하고 있었고 실제 정책으로 펼친 ‘사대’는 식민사관에서 설명하던 그런 굴종적인 외교가 아니라 당시 동아
사대 통폐합에 관한 논의는 지난 91년 임용고시가 발표된 교종대안에서부터 제시된 것으로 교원양성체제 개편안에 늘 등장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논의가 상당히 급박하고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예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사대 통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1. 서론
한국고대사에서 삼국유사와 함께 가장 기본적 사료로 사용되어 있는 삼국사기는 김부식(1075~1151)의 책임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동안 김부식은 한국 근대 민족주의 사학을 창시단 단재 신채호에 의해서 사대주의자로 낙인이 찍인 후 그 통념이 일반화되어 그가 저술한 삼국사기는 사대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