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연합국의 전후 대한반도 기본정책이 다자간 국제신탁통치이며, 게다가 미국과 영국이 지원하더라도 소련의 태도 여하에 따라 오랜 연고를 가진 폴란드임시정부가 순식간에 불승인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임정은 세 가지 방향으로 대책을 추진했다.
첫째, 소련과의 우
편찬의 단절과 또한 ‘기록생산-관리-역사기록관리-사료편찬’의 연속된 기록 사이클 관리를 벗어나, 국사편찬위원회와 국가기록원이 별도로 설립․운영되는 관리체계의 이원화가 지금의 상황을 불러온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국가 기록의 효율적․체계적
Ⅰ. 서론
임시정부는 독립의 준비정부로 탄생하였는데 국토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에 있었고 실제에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국민적 기반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민적 기반을 유지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임시정부의 과제였고 존립의 생명이기도 했다. 국민적
ⅰ. 개관
국사편찬위원회는 민족문화를 계승 발전하고 일제침략에 의하여 단절된 한국사 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 역사를 연구·편찬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의 공적인 사료연구 편찬 기관이다. 1946년 3월에 창설된 이래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등 1,000여
편찬계획을 주도하였고, 桃葉岩吉이 실무책임자로서 편찬주임과 간사를 겸임하는 등 소수의 일인들이 모든 업무를 장악하고 있었다.
편찬위원회에서는 10개년 예정으로 《조선사》의 편찬에 착수하였는데, 처음의 3년은 사료수집, 다음의 5년은 사료수집과 편찬·기고, 마지막 2년은 초고정리에 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