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림[士林]이란
사림[士林] = 유교를 닦는 선비 집단
<<고려사>>의 유학을 닦은 관료에 대한 표현
유사(儒士), 유신(儒臣), 유학자(儒學者) 과 같은 표현 사용.
->麗末 ,신유학(新儒學)의 도입 이후
사대부(士大夫), 사인(士人), 사류(士類), 사족(士族)
※ 신유학이 수용되면서 고려의 문사들도 사
훈구(勳舊)와 사림(士林)의 대립 구도는 성종에서 연산군, 그리고 중종에 이르는 시기에 집중 부각된다. 그리고 명종 대를 마지막으로 훈구는 사라지고 사림이 주도권을 잡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훈구세력들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세조(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기점으로 세조를 지지하
士林)들의 처사적 문학(사림문학)이 성행하게 되었다.
관각문학과 사림문학은 사회적인 성격이나 사상적인 기반에서 차이가 있고 조동일. 『한국문학통사2』. 지식산업사 , 2005 , p360 관각문학의 주 담당층인 훈구파는 사대부가 추구하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개념 중 국사 사업이나 외교에 소용
2) 사림(士林) - 정암(靜菴) 조광조
앞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율곡의 개혁사상의 연원은 중국 선유(先儒)의 사상과 『주역(周易)』 등 유가의 주요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개혁사상에 더욱 가까이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과 사상은 사림파의 등장과 그들의 사상, 특히 정암(靜菴
1) 생애
김굉필은 황해도 단종 2년(1454년) 5월 24일에 서울 정동에서 태어나서, 달성군 현풍에서 성장하였고, 연산군 10년(1504년) 51세의 나이로 전라도 순천 유배지에서 죽었다. 후에 처가에 있으면서 가까운 곳에 한훤당(寒暄堂)으로 부르는 작은 서재를 짓고, 뒤에 현풍 서쪽 대니산 남쪽 솔례촌(率禮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