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배심원 제도
미국의 배심제와 과학주의
‘지역사회의 정의’를 표방하는 규범적 가치가 퇴색하고 ‘평결의 정확성’을 추구 하는 과학적 가치가 점차 우세하게 된 점 등…
배심원의 적정 숫자에 대한 판결이나 제도 관련 논의에 사회과학적 시각이 적극적으로 채택된 점
과학주의라는 문
2.1. 구체적 사례에서 드러나는 다산과 정조의 사법관
2.1.1. 동기의 해석
강귀동이 만취해서 싸우다가 싸움을 말리려던 사람을 낫으로 베어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정조는 술에 취해 사람을 죽인 것은 검안내용과 증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보았을 때 확실하나 정황상 명백하게 죽이려고 낫을 휘
사법관만이 재판사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1) 제도의 변화 제도의 변화 부분은 『법원사』, 법원행정처, 1995 부분을 참고하여 적었다. 이후에 나오는 제도 변화부분 역시 자세한 내용은 이 책에서 참고하였다.
군국기무처는 1894년 6월 28일 의안인 「각아문관제」에 따
사법관은 소문이나 심증만으로 범죄 혐의 있는 자를 잡아들여 심문하고 처벌 할 수 있었다.
사법관은 혐의가 있다고 생각되는 자를 고문할 수 있었는데 혐의자에게 잔인한 신체적 고통을 주어 자신이 원하는 자백을 얻을 수 있었다. 보통의 건강한 남자도 견디기 힘든 고문을 약한 여자들이 받게 되면
사법관의 의지를 꺾었을지 모르며, 아마 재판 그 자체에 대한 대중의 반대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마녀 사냥이 일어나려면 마녀 이야기를 믿는 민중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민중의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배 엘리트 계층의 믿음이다. 이들이 사법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