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화 황창무를 들 수 있다. 가무백희는 바로 산악잡희와 같은 놀이들로 추정된다. 황창무 황창무는 가면을 쓰고 춤추는 검무이다. 신라의 황창랑이라는 일곱 살의 소년이 검무를 빙자해 백제의 왕을 죽이고 백제인들에게 피살되었으므로, 신라인들이 이를 슬퍼해 그 모습을 가면으로 만들어 쓰고, 그
산악백희(散樂百戱_가 향악화(鄕樂化)되었다. 이는 고려의 산대잡극으로 이어지며, 조선전기에는 각종 가면희가 선행예능으로 참여하면서 조선 후기,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현전하는 것과 같은 산대도감극 산대도감극은 조선 전기에 산대나례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했던 나례도감이나 산대도감에서
극적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는 무검무(無劍 ).처용무(處龍舞).無 舞 등 가면희가 존재하였으므로 이미 신라시대의 가면극은 상당히 발달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함께 고구려의 무악(舞樂), 백제의 기악(伎樂)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륙 전래의 산악백희(散樂百戱_가 향악화(鄕樂化)되었다.
산악계의 백희와 온갖놀음을 하는 것으로 보아 거의 동명이칭으로 불려왔다. 조선중기 이후, 영․정조조에 이르러 나례도감이 그 명목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예속되어 생활하고 놀았던 많은 창우․광대들을 비롯한 가기와 재인들은 실질적인 생활 터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