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은 1636년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범한 사건이다. 이것은 앞서 있었던 1627년의 정묘호란으로 조선과 후금 사이에 맺은 강화조약 불이행에 따른 복수적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이고 명분적 이유일뿐 실상은 1623에 있었던 인조반정으로 인해 발생한 조선과 후금, 명 삼국 간의 외교
조선은 청나라에게 군신(君臣)의 예를 지킬 것
명나라의 연호를 폐하고 관계를 끊을 것
왕의 장자 및 제2자 여러 대신의 자제를 선양에 인질로 보낼 것
명나라 예에 따라 사절을 보낼 것
출병 요청에 임할 것
청군이 귀환할 때 병선(兵船) 50척을 제공할 것
내외 제신(諸臣)과 혼연을 맺어 화호(和
5) 병자호란 당시의 남한산성의 의미 : 남한산성의 돌맹이, 기왓장 하나까지도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 이었다. 남한산성은 우리역사 속에서 우리민족이 당한 침략에 대항한 항전 정신과 독립정신이 깃들어진 장소이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도성과 한강유역을 방어하는 군사적 최적의 요충지로서 비록 항
사용했을 뿐, 현실에 적용시키지는 못했다. 삼전도의 굴욕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조가 외교를 잘못해서 일어난 전쟁”이라 판단하고 있다. 필자 또한 이견은 없지만 인조가 광해군을 쫒아낸 초기에 잘못된 행동을 벌임으로서 북방의 군사력은 이미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