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츠베리 경(애슐리)을 만나 그의 주치의(간장병)가 되고, 그리고 그의 아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한층 깊은 관계로 발전하고 이에 정치학적, 철학적 성향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샤프츠베리는 로크에게 정치적 직위와 학문적 영예를 주선해 주었다. 그의 도움으로 로크는 로얄 소사이어티에 들어갈 수
샤프츠베리, 그의 영향을 받은 허치슨, 그리고 흄의 사상의 3가지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샤프츠베리는 공리주의의 기초를 설립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도덕적 판단을 일종의 자연적 본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것은 로크의 경험론을 도덕의 영역에 적용한 것이다. 또한 그는 선이란
샤프츠베리 백작의 초청으로 그 가정의 주치의 겸 가정교사가 되었다. 이후 로크는 샤프츠베리 백작의 후원으로 철학 연구에 몰두하고 정치에도 관여하였으며 교육에 관학 이론과 경험을 정리하여 저술할 수 있었다. 다만 샤프츠베리 백작이 왕정복고 때 정치적인 문제로 망명하게 되자 로크도 네덜란
샤프츠베리 백작)을 알게 되어 그의 시의(侍醫) 및 아들의 교사 그리고 고문이 되었다. 백작이 실각되자 반역죄로 몰려, 1683년 네덜란드로 망명했다가, 1689년 사면되어 귀국하였다. 망명생활 동안 각지를 전전하면서 여러 학자들과 친교를 맺고, 귀국 후 《종교 관용에 관한 서한》(1689) 《제2서한》(1690)
도덕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혹은 이성을, 혹은 감성을 도덕의 근원으로 들곤 한다. 윤리의 근거를 이성에서 찾는 이성론자들에는 칸트와 헤겔이 있고, 감성을 윤리의 근원이라고 주장한 감정론자들에는 샤프츠베리, 허츠슨, 그리고 흄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칸트나 헤겔과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