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도와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이 나타나는 시대·사회적 배경
(1) 국내적 배경
1910년대 간도, 연해주 지역에서의 한국독립운동은 일제의 침략에 대응한 한말국권회복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일제 침략이 가시화되던 1894년 의병전쟁의 태동과 동학농민전쟁의 2차 봉기는 그 한국독립운동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참모장이 되었다.
1920년 지청천(池靑天)과 함께 소속부대를 안도현(安圖縣) 밀림 속으로 옮겨 제2의 군사기지를 구축했으며, 다시 11월에는 북로군정서군 및 홍범도(洪範圖)의 군과 합세하여 밀산(密山) 및 러시아 등지로 이동하여 독립군의 희생을 줄였다.
1922년 연해주(沿海
군정서군 북로 군정서군)은 1919년 북간도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이다. 1919년 결성된 대한 정의단과 그 산하의 대한 군정회가 통합하여 만든 대한 군정부가 그 시초로 그 해 12월 상하이 임시정부의 지시로 대한 군정서로 개명하였다. 이를 서로군정서군과 대비하여 일반적으로 북로 군정서군으로 칭
군정서 독립군은 대종교 중심의 독립군이었으며 약 600명의 정예병력과 100명 가량의 보충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대한독립군, 국민회독립군,·한민회, 의군단, 신민단 등 5개부대 연합군으로 이루어진 홍범도군에는 1,950명의 병력이 있었다. 약 2500명 가까이 되는 이 독립군은 백운평 전투, 완루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