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국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의 또 다른 모습인가?
: 개인적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서울파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맑스주의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서울파를 비롯한 많은 사회주의 분파들은 이 사상에 고취하여 조선에서 민족해방과 더불어 사회주의 혁명을 꾀했다. 본인이 연구한
서울파의 해외 사회주의세력에 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말미암아 혼선을 거듭하게 된다.
한편 1924년 2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는 조선 문제에 대한 위원회를 소집하여 ‘조선 문제에 대한 결정’을 다시금 내리게 된다. 위원회 소집당시 코민테른 내부에서도 식민지 조선의 혁명운동을 위한 전위당과
서울파 주도의 전조선청년당대회에서 있었던 민족문제에 관한 토론사항을 보면
1. 주의, 사상이 동일한자는 동일민족으로 간주한다.
2. 민족자결은 오늘날 無用이다. 무산계급의 해방을 제1의적 急務로 한다.
3.민족차별을 철폐하고 계급타파에 분투한다는 내용이 있다.
1924년 4월에 열린 서울파 주
서울파’로 불린 이들은 김사국을 코민테른의 파견하여 조선공산당으로 승인받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3년 7월 서울에서 홍명희, 김찬 등은 신사상연구회를 조직하여 강습회와 토론회를 열고 책과 잡지를 펴냈다. 이들은 1923년 5월 꼬르뷰로(고려국) 국내부와 관련을 맺고 있었다. 신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