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그늘 아래에 있느니 만큼, 그 평가는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진보 문학가 중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미당의 영향을 받았다. 고은이 대표적이다. 미당 시의 특징은 바로 우리말을 다루는 그의 천부적인 감각이다. 그의 고향 전라도의 사투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미당의 시 언어는 민족어의 가
2) 서정주의 1940년대 활동
1942년 여름, 서정주는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했던 이 시기에 그는 굶주림과 학질에 시달리며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학질에서 겨우 회복된 뒤부터는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는데 그 전기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바로 「
한국어의 탁월한 구사능력이 뒷받침된 서정주의 시는 초기시의 강력한 생명 탐구에서부터 형이상학을 방불케 하는 이후의 전통 탐구에 이르기 까지, 한국시의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 오린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물론 그 평가 이면에는 그의 시가 점차로 역사적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응주의로 이어졌
Ⅰ. 미당 서정주의 생애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미당(未堂)이다.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태어나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한 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면서 등단해 같은 해 김광균(
서정주의 삶에 나타난 여러 문제들과 결핍과 질병적인 요소들을 관찰하고 그가 문제를 바라보고 대처하는 방식을 연구해 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질병이 태동하는 시인의 유년기
가. 서정주의 유년기
서정주의 최초의 기억은 두 살이나 세 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어머니가 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