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이 명성황후와 흥선 대원군이었다. 조선 시대 말부터 국운이 기울어 일제에게 국토를 강탈당하기 전까지 조선의 정치를 이끌어 간 것이 이 둘로 대표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명성황후는 외국 세력을 끌어들여 나라를 망하게 했고 흥선
석방되었다. 1910년 추밀고문관(樞密顧問官)이 되었다. 이후 계속하여 정계의 배후조종자로서 활약, 1924년 이른바 호헌삼파(護憲三派:憲政 ·政友 ·革新俱樂部) 성립에 진력하였다.
흥선대원군 - 조선 후기의 왕족 ·정치가.
호 : 석파(石坡)
본명 : 이하응(李昰應)
별칭 : 자 시백(時伯), 시호 헌의(獻懿)
선택한 이유는 우리의 아픈 역사인 근현대사의 시작을 정치적으로 다스렸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
이름은 이하응(李昰應).
자는 시백(時伯),
호는 석파(石坡).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고도 불렸다.
아버지는 영조의 현손 남연군(南延君) 구(球)이다.
아들이 조선 제26대 왕 고종이다.
Ⅱ 흥선대원군의 삶과 정치
이름 이하응(李昰應). 자 시백(時伯). 호 석파(石坡). 시호 헌의(獻懿). 영조의 5대손이며 고종의 아버지이다. 1843년(헌종 9)흥선군에 봉해지고, 1846년 수릉천장도감의 대존관이 된 후 종친부 유사당상·도총관 등 한직을 지내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밑에서 불우한 생활을
이름 이하응. 자 시백. 호 석파. 시호 헌의. 영조의 5대손이며 고종의 아버지이다. 1843년(헌종 9) 흥선군에 봉해지고, 1846년 수릉천장도감의 대존관이 된 후 종친부 유사당상&도총관 등 한직을 지내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밑에서 불우한 생활을 하였다.
왕족에 대한 안동김씨의 감시가 심하자 보신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