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지역에서 개창한 사자산문의 개조로 추앙되었다. 또한 선사는 말년에 주석한 쌍봉사를 중창하였으며 이곳에서 경문왕 8년(868) 4월 18일에 입적하였다. 왕은 시호를 철감(澈鑒), 탑명(塔名)을 징소(澄昭)라 하사하였다. 비신의 기록을 볼 수 없어서 이처럼 간단한 내용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대성이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하다(신문왕 대)
모량리(혹은 정운촌이라고도 쓴다)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아이가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평평하여 성과 같았으므로 이름을 대성(大城)이라 했다. 집이 군색하여 살아갈 수가 없어 부자 복안(福安)의 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고, 그 집에
먼저 탑파의 성격에 따라서 불탑과 승탑으로 나눌 수 있다.
불탑(佛塔)은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한 것이고 승탑(僧塔; 浮屠)은 승려의 유골(遺骨)을 모신 것이다. 전남 쌍봉사 철감선사탑이 이 승탑 종류 중의 하나이다.
*전남 쌍봉사 철감선사탑 (국보 제57호)
소재지 :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 195-1
1. 서론
어느 시대든 정치적·사회적으로 새로이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라면 나름대로의 고뇌와 책임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나말여초’의 역사적 전환기 속에서 육두품이라는 신분적 제약으로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펼 기회조차 없었던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