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녕대군묘 및 신도비
성녕대군은 조선 제3대 태종의 4째 아들로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고 창령성씨 좌찬성 억의 딸과 혼인하였다. 일찍이 성녕군에 봉해졌다가 태종 14년(1414) 대군으로 진봉되었는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태도가 단정하여 부왕의 총애를 받았다. 대광보국대부의 위계에 올랐으나
ⅰ) 무녀 금지와 무세(巫稅)
조선 초부터 무당에 대한 금지는 계속 있어 왔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라에서는 국무당(國巫堂)를 직접 채용하여 도성 안에 살게 하고 굿을 하였다. 왕실에서 조차 병이 나고 위독해지면 무당에게 치료를 맡겼다. 그 예로 태종의 아들인 성녕대군이 병에 걸려 위독하게
성녕대군이 홍역에 걸려 위독해져 맹인 점복가를 불러 점을 쳤는데 점패가 틀려 죄를 면치 못한 사례도 있다. 점패를 잘 맞춰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례도 있지만 이들이 점패가 틀릴 경우 벌을 받은 사례를 보면 이들도 참으로 살기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점패가 항상 맞는 것이 아니고 어
성녕은 어렸을 적에 병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태종이 왕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형제들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인 것과 비교해보면 참 우애깊은 형제이다. 세종의 형제들은 세종의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종의 왕권을 더욱 튼튼하게 지켜주는 존재였다.
효령대군은 90세의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