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파들은 이러한 김일성의 지도력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해방 이후 절대 우위의 유일정통성의 부재상황은 공산주의자들은 분화시키고 파벌화시켰다. 김일성은 “사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정세는 매우 복잡하였습니다. 그때 당안의 형편만 보아도 <<박헌영파>>요, <<오기섭파>>요, <<
Ⅱ. 소련파에 대한 정의
이종석(1989)은 소련파에 대한 정의를 “소련군의 진주와 함께 소련군민정부의 통역, 행정 요원으로 입북한 소련계 한인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인 이야기』에 등장한 80명의 소련파 인물들은 이러한 정의보다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
소련파는 나중에 숙청되어 반강제로 소련으로 돌아가게 된다. 유성철은 88여단에서 김일성과 함께 복무한 고려인은 12명이며 이 중 숙청당하지 않은 사람은 김봉률(전 인민무력부 부부장) 1인이었다고 한다(유성철 1992, 42).
고려인 이야기에 나오는 김창국, 리동화, 박창옥, 유성철도 혹독
1. 해방 후의 북한
건국준비위원회
2) 김일성의 세력 확장
3)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의 활동
4) 북조선 노동당 , 북조선 인민 위원회 창설
5)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수립
2. 분단의 전개와 6.25전쟁
2-1> 분단의 전개
1) 갑작스러운 광복
: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갑작스러운 항복으
북한 내부 자료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서 해외 소재 북한자료는 북한연구의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실증적 자료로서 의의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문헌자료와 더불어 해외소재 북한관련 인사들의 구술자료 또한 자료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해외의 각 지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