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유
韓愈(한유;768∼842)는 字(자)가 退之(퇴지)로 중당을 대표하는 문학가이다. 그는 유종원과 함께 고문운동을 제창하여 '복고'를 기치로 삼아, 先秦(선진)과 兩漢(양한)의 산문전통을 계승할 것을 주장하고 文以載道(문이재도)를 강조하였다.
한유는 고문가답게 자신의 시풍을 尙怪(상괴)와
소순의 문장을 모방하고 전송했으며, 재상 한기도 그의 문장을 조정에 추천하여, 조정에서 소순을 비서성의 교서랑에 임명하기도 했다. 그는 후에 禮書의 수정작업에 참가하고, 또 《太常因革禮》 100권을 지었으나, 책을 완성한 후 바로 세상을 떠났다. 소순은 그의 두 아들 蘇軾, 蘇轍과 더불어 문장에
소순이 손수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풍아한 아취를 지닌 그 생가에 삼소, 즉 아버지 순과 식, 아우 철, 세 사람의 사당이 명초에 세워졌다. 문호 소동파의 생가가 서민의 거리인 사곡행에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우며, 뒷날 고관으로서 민중과 접해도 소탈하여 조금도 거리끼는 바 없이 서민 생활에 친숙
소순의 문장을 모방하고 전송했으며, 재상 한기도 그의 문장을 조정에 추천하여, 조정에서 소순을 비서성의 교서랑에 임명하기도 했다. 그는 후에 禮書의 수정작업에 참가하고, 또 《太常因革禮》 100권을 지었으나, 책을 완성한 후 바로 세상을 떠났다. 소순은 그의 두 아들 蘇軾, 蘇轍과 더불어 문장에
당송팔대가는 당대와 송대 사이의 걸출한 산문작가 여덟 명으로, 당나라의 한유·유종원, 송나라의 구양수·소순·소식·소철·증공·왕안석을 일컬어 당송팔대가라 한다. 당나라 때 한유와 유종원은 당시 만연했던 변려체 풍조를 반성하고 진한시대 이전의 유교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고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