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방의 귀국 전 거병과 귀국 후 거병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중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흑치상지의 활약여부는 삼국사기에 조금 기재되어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흑치상지가 도망하여 흩어진 군사를 모으니, 10일 동안에 귀부하는 무리가 3만 명이나 되었다. 소정방은
소정방과의 협상을 명령한다. 나이로 밀어부치려던 김유신. 불과 몇 년 차이로 소정방에게 밀리게 되고, 결국 7월 10일까지 조공을 조달해야 한다. 덕물도 앞바다까지 조공을 운반하기 위해선 백제군을 뚫어야 하는데, 백제에는 김유신의 영원한 숙적 계백 장군이 버티고 있다.
고구려를 치러 가는 것일
<황산벌> 관람 후의 감상
1. 내용요약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던 660년, 딸의 원수인 백제 의자왕에게 앙심을 품은 김춘추(태종 무열왕)는 당나라와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여 김유신 장군에게 당나라의 사령관인 소정방과의 협상을 명령한다. 그러나 결국 김유신은 소정방에게 밀리
소정방과 무열왕에게 굴욕적인 화평을 구걸하였고 그 강화의 순간마저도 자신의 부장에 의하여 반강제적으로 끌려나온 것이었다. 의자왕의 항복에 대하여 『舊唐書』에서는 “대장 이식이 의자를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였다”고 하고 『新唐書』에서도 “장군 이식이 의자왕과 함께 항복하였다.”라
소정방과의 협상을 명령한다. 그러나 결국 김유신은 소정방에게 밀리게 되고, 결국 7월 10일까지 조공을 조달해야 한다. 덕물도 앞바다까지 조공을 운반하기 위해선 백제군을 뚫어야 하는데, 백제에는 김유신의 영원한 숙적 계백 장군이 버티고 있으니...
당나라 배들이 서해 덕물도 앞바다에 닻을 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