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란과 소중화
포로가 된 왕자들
청군에 항복한 조선의 인질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심양으로 잡혀감(1637)
심양일기, 심양장계
: 두 왕자의 심양체제, 당시 조청관계, 건국 당초의 청 왕조에 관해 보여줌
1637년 4월 ~ 1645년까지 8년의 인질생활
소현세자
외교 절충 책임자 역할
명 잔존세
3. 조선왕조실록과 두 종류의 광해군 일기
국왕의 일대기를 의미하는 실록은, 당대 이후부터 국왕의 사후 편찬하도록 제도화 되어있다. 조선에서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부터 편찬을 확인할 수 있으나, 각 왕대의 실록이 모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실록과 달리 고려시대의 실록은 현존하지 않고 있다.
뛰어 넘지 못한 소중화, <연행가>
1. <연행가>의 내용 요약 및 부연 설명
어와 쳔지간에 남자되기 쉽지 안타.
평생의 이 내 몸이 즁원보기 원하더니
병인년 츈 삼월의 가례 책봉 되오시매,
국가에 대경이요, 신민의 복녹이라.
상국에 쥬청헐세 삼 사신을 내이시니,
상사에 뉴 승상과 셔 시랑은 부사로다.
소중화라는 도그마에 찌는 당대 지성사에 북학의 호흡을 불어넣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연암 역시 이러한 ‘무드’속에서 중원에 대한 꿈을 고양해 갔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연암의 연행기는 이 이질적인 계열 내에서도 또 하나의 ‘변종’이다. 즉 『열하일기』는 그 무엇에 견주기 어려운 지층
소중화(小中華)임을 주장하려는 유학자들의 중국 숭배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조선조 사회에 유교이념이 점차 정착함에 따라 조정에서는 국기에 공헌이 있으며 충의를 다한 공신 명현들에 대하여 추존 운동이 적극 전개되었고, 이러한 분위기가 민간에 의한 사우 건립의 커다란 촉매제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