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품문(小品文)으로서의 척독산문
1.1. 조선후기 소품문(小品文)의 유행
조선후기는 산문(散文) 문체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 시기였다. 기존의 조선사회는 중세문화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적 가치를 담고 있는 고문(古文)을 중시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당송고문(唐
1. 소품문(小品文)으로서의 척독산문
-기존의 조선사회는 중세문화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성리학적 가치)를 담고 있는 고문(古文)을 중시하는 분위기
-> 진한(秦漢) 시대의 산문을 모방하는 의고문(擬古文)이 성행
-> 산문이 국가나 사회, 학문 등‘크고 높은 것’을 위해 복무
-> 숭경존성(
⑷ 소품문 창작의 발달 과정.
18세기 소품문 창작에서 정점을 이루는 인물들은 여럿 있으나 그 중, 백탑파 백탑파란, 원각사지 10층 석탑 인근에 살았던 북학파 시인을 말하는 것으로,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박지원 등이 있다. 현재의 서울 종로 2, 3가 일대는 원각사가 있었기 때문에 대사동(大寺洞)
2) 척독 소품문의 실례
(1) 연암 박지원의 척독
박지원(1737-1805)의 척독 작품의 일상생활의 애환, 벗들 간의 진한 우정, 점잖은 충고와 신랄한 풍자, 낄낄대는 해학 등 폭넓은 내용이 담겨있다.
‣ <답경지(答京之)1>
-> 이별의 말이 야단스러워도 이른바 ‘천리 길에 그댈 보내매 마침내는 한
열하일기란?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대표작
26권 10책, 필사본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1780년 열하를 다녀온 것을 기록한 연행일기
1783년 완성
왜 열하일기인가?
1780년, 동지사 박명원 일행과
함께 청나라로 향한 박지원
청에서 기록한 26편의 일기가
<열하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