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국정책에 대해서는 전자의 폭군이론에 의거하고, 서원철폐와 호포법실시 등 국내정책에 대해서는 후자의 개혁자 이론의 척도로 대원군을 평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논자에 따라 심한 의견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각종 국사서적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정확
1. 서론
우리 3조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한국사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발제의 중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쇄국정책을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관점에 비추어 재평가를 하려고 한다.
2. 본론
1. 쇄국정책
-쇄국정책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와 통상과 교역, 외교관계를 트지 않거나 제한
쇄국정책의 원인은 크게 3가지가 있다. 먼저,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하는 등의 개혁을 보였지만, 그는 유교를 믿었으며, 이를 통해 위정척사사상을 고수했다. 두 번째, 흥선대원군은 중국이 아편전쟁으로 몰락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쇄국만이 살길이라 여겼던 것 같다. 세 번째, 흥선대원군이 당시에
쇄국정책에 대한 평가는 두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당시 국세정세에 관한 안목이 부족했고 그 특유의 고집스러운 성격에서 이러한 정책을 택하였다고 말한다. 특히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폐쇄적 외교노선을 통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 망국의 원인이라는 경향이 있다. 이덕주,
쇄국정책에 맞서 개화론자들은 부국강병을 위해서 개화사상을 도입하고 문호를 개방하여 대외통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즈음 조선 조정 내에서의 권력투쟁으로 대원군이 하야하게 되자 이러한 국내의 정황을 탐문한 일본은 1875년 통교교섭을 위해 조선에 사신을 파견해왔으나 교섭은 성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