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의가 이천을 비롯한 4명의 과학자에 의해 공동으로 제작되었다. 이때 만든 혼천의는 수격식 시계 장치로 움직이는 혼천시계이다. 이천은 이 물레바퀴로 움직이는 시계 장치의 혼천의를 만드는데 기술적인 책임을 진 과학 기술자였다. 다른 세 사람의 학자들은 문헌과 이론적인 자료를 맡았다. 이천
혼천의에 대하여 실록에는 그 이상의 언급이 없다. 정인지, 정초 등이 고전을 조사하고 이천, 장영실(蔣英實) 등이 제작을 감독하였는데 먼저 목간의(木簡儀)를 만들고 이어 청동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세종 이후 조선 천문학의 가장 기본적 천문 기구이다. 이때부터 물을 동력으로 이용한 수격식(水激
혼천의(渾天儀)라는 장치보다 개량했다는 뜻에서 간단한 장치란 의미로 붙인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혼천의와 간의를 얼핏 비교해 보면 간의가 더 크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세종 14년(1432) 7월 세종대왕은 신하들과 이야기하다가 정인지에게 천문 기구를 만들 것을 명령하였다. 세종대왕은 먼저
물시계는 해시계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시계로 알려져 있다. 물시계는 용기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그곳을 통해 나가거나 들어오는 물의 양으로 시간을 측정한다. 이런 특징을 가진 측정방식 덕분에 해가 뜨지 않는 흐린 날이나 밤중에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밤중의 시간을 알려주는
1. 서 론
세종하면 누구나 먼저 떠 올리는 것은 한글의 발명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뛰어난 과학기술상의 업적으로 기념될 만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그의 재위 기간(1418-1450) 만큼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 시기가 없었다고 까지 말할 수 있다.
세종시대의 과학기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