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규모 토목공사 그리고 고구려와의 전쟁
수 문제는 검소하다 못해 인색한 사람 이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수 문제의 사후 국고에는 엄청난 양의 재화가 축적되어있었다. 이러한 재화는 수양제의 대규모 건축물인 대운하와 궁전에 사용되었고 고구려 및 기타 부족을 점령하려고 하는 전쟁에 사용
1. 들어가며
이번의 주제는 수양제의 업적과 그에 대한 평가이다. 내가 이 주제를 잡은 이유는 우리가 배우는 중국의 역사에서 ‘수양제는 폭군인가’라는 제목이 있다. 이 것을 읽어 보니 수양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우리들의 선입견을 버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가
수의 치세보다 당의 치세를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수 왕조가 단명(短命)한 이유로 인해서 수의 멸망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고찰이 이루어져 왔었다. 그러한 고찰의 결과 수의 멸망은 언제나 양제(煬帝)의 폭정(暴政)으로 인해
Ⅰ.수·당전기를 살펴보기에 앞서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혼란의 시기가 도래하면 그 혼란기를 평정하는 국가(영웅)가 등장한다. 이 국가는 혼란의 시기를 평정한 만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힘의 정치를 하려 한다. 또한 무리한 정권 남용으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