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서 그들이 내세운 교회론이 지금 오늘날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비스(PaulD.L.Avis)는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에 있어서 교회 라는 저작에서 루터와 칼빈을다음과 같이 대비시켰다. 루터는 일차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복음의 순수성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칼빈
제 1 장. 들어가는 말
교회에 대한 고백은 사도 신조의 중요한 조항 중의 하나였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고백이 있은 다음에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라는 말로 고백되었다.) 즉 그리스도의 교리를 적용하는 교리(구원론)는 자연스럽게 교회론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
자 루터라든가. 멜랑히톤, 에라스무스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을 따라 한 위대한 인물이 세상에 햇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칼빈이었다. 칼빈은 본래 프랑스 북쪽 피카르디 지방에 있는 노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제랄코반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2세 때 아버지의 영향력에 의해 노용 대성당
Ⅰ. 칼빈과 제네바
존 칼빈은 1509년 7월 10일 피가르디 지방의 북부에 속하는 교회도시 노용에서 아버지 게라드 코뱅과 어머니 잔느 라 프랑스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 났다. 아버지는 이름있는 법률 자문관으로 중상위권의 생활을 누렸으며, 이러한 아버지의 덕분으로 칼빈은 귀족의 집에 머물면서
자면 종교개혁의 ‘개혁’은 세속화한 중세의 기독교를 극복하고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려는 개혁운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와 칼뱅의 신교는 자기신뢰와 자기결정을 고무했고 이성에 입각한 인간적 판단의 가치를 인정하고 현세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켰다.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