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교사가 19세기의 방법으로 21세기의 아동을 가르친다’ 라는 말이 20세기 우리 교육계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 이는 교실붕괴나 공교육의 위기 등 우리 교육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로 21세기에 들어와서도 21세기가 요구하는 인간을 학교에서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사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 1175번지에서 부친 찬영씨와 모친 장찬붕 여사의 맏아들로 태어남
1919년(5세) 3·1운동 발발. 평양 숭덕학교 고등과 교사로 계시던 부친이 태극기와 독립선 언서 평양 시내 배포 책임자의 한 분으로 일경에 붙들려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음
1923년(9세) 평양 숭덕소학교 입학
숭덕재활원과 자원봉사자의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충주시 노인 복지관을 방문하여 각 센터의 통계 자료를 확보하였다. 동시에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인력이 활동하는 주말을 이용해 다시 시설을 방문하였으며 설문조사는 숭덕재활원 자원봉사자 45명과 충
황순원론
1. 약전 및 작품활동
1915년 평안남도 대동면 재경면에서 출생.
1919년 평양 숭덕학교 고등과 교사로 재직하던 부친이 31운동으로 인해 실형을 받음.(이후 단편 <아버지>의 소재가 됨.)
1929년 평양 숭덕소학교 졸업. 정주 오산중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다가 건강 때문에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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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덕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한 일로 옥살이를 하기도 한다. 그때 황순원의 나이 만 4세. 아버지가 1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는 동안 어머니 장찬붕(張贊朋)과 단둘이 시골집에서 고독하게 지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황순원이 맏이이고, 밑으로 아우가 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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