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지이며 겨울에는 기묘한 무송과 얼음 낭떠러지를 구경할 수 있다. 정강산은 중국의 혁명성지로서 북경~구룡철도가 전선 관통된 후 정강산을 찾는 해내외 인사들과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여산, 정강산, 삼청산, 귀계 용호산은 국가급 명승지이며 호구 석종산, 길안 청원산, 남창 등왕각, 청운보
앉아 흉보기와 문틈으로 손 보기며
담에 올라 시비 구경 어룬 말삼 초달기와74)
금강산 엇지 알고 구경하니 둘재로다
기역 니은 모르그든 책을 엇지 들고 안노
안짐 안짐 용열하고 거럼거리 망측하다
달음박질 하난 때의 너틀 우슴75) 무삼일고
치마꼬리 히여지고76) 비녀 빠져 개가 문다
허리띠 어다 두
구경하는 곳이 있으나 마침 일 있는 때를 당하여 한번도 시원치 지내지 못하는 고로 관에서 대궐 들어가는 외에는 눈에 보이는 바가 없는지라. 치형은 이진사 자송과 이검서 경인을 좇아 날마다 구경하고 들어와 본 바를 전하니, 내 일기에 누관樓觀과 산천과 승지와 풍속을 기록한 바가 치형의 전하는
승지를 찾아가 제를 올리고 지성으로 빈 끝에 드디어 아이를 갖고 귀한 딸 아이를 낳아 이름을 춘향이라 지었어요.
남원 부사 이한림의 자제 이도령이 공부만 하는 생활에 염증을 느껴 어느 날 방자와 함께 고을을 구경코자 하였는데, 집을 나서 광한루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던 중 이도령은 단오일을
승지(同副承旨) 때 남인(南人) 정개청(鄭介淸)의 서원(書院) 철폐를 놓고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과 논쟁, 탄핵을 받고 삭직당했다. 1659년 남인의 거두로서 효종의 장지문제와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를 가지고 서인의 세력을 꺾으려다가 실패, 삼수(三水)에 유배당하였다. 치열한 당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