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 중국 영화사의 시기 구분
중국 영화의 역사는 크게 다섯 시기로 구분되고, 한 시기를 ‘세대’로 이름붙이며, 각각의 세대 중에서 ‘제5세대’가 예술적으로 가장 큰 성취를 이루었고 따라서 이들이 중국의 영화를 세계에 알린 장본인들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1980년대
식민지 경험을 겪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이 둘 국가는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대만은 한국의 경상도 면적만한 나라이다. 1590년 포크투칼인이 대만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포모사(Fomasa)라고 명명하였고, 1624년에 네덜란드가, 1626년에는 스페인이
Ⅰ. 대만(타이완)의 영화
사진기술은 1858년 천진조약(天津條約)이 체결된 뒤에야 비로소 중국의 동남해안에 위치한 대만 섬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중국 본토의 영화가 서구와 미국의 주도로 들어온 반면 대만 영화는 철저하게 일본의 식민지 영화로 시작되었다.
1. 일본의 식민시기와 장개석(蔣介
식민지총독제제와 러시아의 총독정치를 모방한 대만의 통치체제를 모방한 것이나, 한민족의 끊임없는 저항과 전통성이 작용하여 치안 유지를 요체로 하는 독특한 형식의 식민지 통치체제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한국에 이와 같은 무관통치체제가 성립되기까지는 약 6년간이라는 실험적 준비기간이 소
대만문학은 황국문학이라는 일제의 어용문학을 강요받아 암흑시대로 접어든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식민지 체제의 지속과 더불어 대만 작가들은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사용하게 되고, 따라서 일본 문단에 활발한 진출을 하게 된다.
해방 이후의 대만문학은 그 방향을 놓고, 다양한 모색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