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하대의 상황이 언급된다. 이것은 고려의 건국이 신라하대의 정치 사회적인 모순으로 발생했으며 또한 그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고려왕조가 민중으로부터 새로운 왕조라는 정당성을 인정받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신라가 멸망하게 되는 원인 특히, 수취제
멸망에 대한 사론에서도 나타난다. 백제의 멸망원인을 "이에 당 고종이 두 번 조서를 내려 그 원한을 풀도록 하였으나 백제는 겉으로는 따르면서 속으로는 어기어 대국에 죄를 지었으니 그 멸망은 또한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라고 하였고 고구려의 멸망원인에 대해서는 "겸손한 뜻이 없고 중국의 봉토
신라의 관점에서 쓰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즉, 의자왕은 신라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백제 정복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희생양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가 가진 한계점을 파악하고, 나아가 왜곡된 진실을 파헤쳐 백제멸망의 원인을
신라를 위협할 정도로 부국강병(富國强兵)했던 국가인 백제가 퇴로의 길을 겪다가 하루아침에 멸망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 백제 멸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알고 있는 의자왕에 대한 평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 속에 등장하는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것이 정말 사실
신라로 간 안승을 맞아 왕으로 옹립한 뒤 한성(지금의 황해도 재령)을 근거지로 항쟁을 벌였다. 이어 요동지역의 안시성과 부여성에서도 반당투쟁이 발발했다. 이 무렵 신라는 고구려의 부흥 운동을 지원하였는데, 그것은 당이 옛 백제 지역에 설치한 웅진도독부와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