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향리가 관직에 진출하여 신진사대부로 자리매김하게 된 원인
고려 중기에도 과거 응시 자격을 가지고 있었던 호장 이상의 향리 계층은 적극적으로 관직에 진출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향학에서 받은 교육만으로는 사학의 우수한 교육을 받은 문벌귀족세력을 누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신진사대부’에서 ‘사대부’라는 용어는 고려전기부터 널리 쓰이고 있을뿐더러 의미도 문무관료 전체를 뜻하고 있으므로 부적당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김광철, 위의 책.
‘신진사대부’라는 용어 대신에 ‘신진사류(新進士類)’, ‘신진관료(新進官僚)’, ‘신흥관인(新興官人)’, ‘신흥사족(
신진사대부’에서 ‘사대부’라는 용어는 고려전기부터 널리 쓰이고 있을뿐더러 의미도 문무관료 전체를 뜻하고 있으므로 부적당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김광철, 위의 책.
‘신진사대부’라는 용어 대신에 ‘신진사류(新進士類)’, ‘신진관료(新進官僚)’, ‘신흥관인(新興官人)’, ‘신흥사족(
신진세력을 사림파라 한다.
사족 - "사대부지족"의 준말. 사대부가 될 수 있는 족속. 양반신분층을 지칭하는 용어.
= 사류
사대부(士大夫) < 사림(士林) < 사류(蛇類) < 사족(士族)(가장 넓은 양반층을 포함하는 의미)
양반의 성립과정
고려시대의 양반
초기
① 건국초기 - 개국공신, 호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