却說宣帝方悲悼許后, 卽有人遞入奏章, 內言皇后暴崩, 想係諸醫侍疾無狀, 應該從嚴拏究。
각설선제방비도허후 즉유인체입주장 내언황후폭붕 상계제의시질무장 응해종엄나구
각설하고 한선제는 허황후를 비탄하게 애도하고 어떤 사람이 번갈아 상주를 올려 안에 황후가 갑자기 죽음은 생각건대 여
실덕을 지적하고 영조의 처사를 옳다고 보는 김구주 중심의 벽파의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그 후 남인과 소론도 시 벽으로 분파되었다. 이 시 벽파의 대립은 사도세자의 문제를 분쟁의 표면구실로 삼아 대립하게 되었고, 또한 남인의 시 벽파는 당시 전래하기 시작한 가톨릭을 믿는 신서교파와 반서교
실덕과 사림을 장살(杖殺)할 것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이런 내용은 정조의 심기를 건드렸으며 충분히 가문이 몰살당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까? 김하재로 인해 광산 김씨 가문은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몰락했으며 가솔들은 노비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
실덕과 이민족의 침입으로 상(商)이 멸망하고 들어선 왕조인 주(周)까지, 군주는 왕(王) 혹은 천자(天子)로 불렸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 명칭은, 많은 신들 가운데 최고의 신의 자격으로 천하를 지배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중국인이 생각하는 하늘[天]은 원래 푸른 하늘을 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