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실학자(실학사상) 홍대용의 행적
북학파의 학자인 박지원, 박제가 등과 친교를 맺었으며, 학풍은 유학보다도 군국 경제에 전심하였다. 1765년(영조 41) 숙부인 억(檍)이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갈 때 군관으로 수행, 베이징에서 엄성 반정균 육비 등과 사귀어 경의 성리 역사 풍속 등에 대하여 토론했다.
실학자들이었다.
박제가가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용후생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였음은 박지원이 지은 「북학의」 서문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들 북학파 가운데서도 박제가는 ‘재물은 우물물과 같은 것이어서 퍼내면 퍼낼수록 나오지마는 그냥 두면 말라버린다’고 주장할만큼 뛰어난 이
Ⅰ. 실학자 혜강최한기의 생애와 학문
혜강 최한기는 1803년 음력 10월 26일 아버지 최치현(삭녕최씨)과 어머니 청주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최치현은 개성지역의 이름난 시인이었고, 외조부 한경리는 조유선의 제자로 개성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학자였다. 양부 최광현은 무과 출신으로 곤양군수를 지
Ⅰ.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집필배경
우하영은 조선후기의 어려운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새로운 학문사상인 실학사상이 본격적으로 개화되기 시작하던 때인 영조17년에 태어나서 정조대를 거쳐 순조 12년까지 활동한 실학자이다. 그는 신분상으로는 충청도 단양의 우씨 가문에서 태어난 양반으로 어
실학자들은 농촌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농촌경제의 안정 여부는 사회의 안위와 국가의 존폐에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 실학자들은 농촌경제의 안정을 추구하여, 농민층의 입장에서 토지제도, 조세제도, 군사제도, 교육제도 등의 폐단을 시정하려 하였다. 실학자들은 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