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서준섭과 심선옥은 김기림의 시론을 중심으로 이 논쟁을 바라보았으며, 필자도 김기림과 임화를 다루는 글에서 부분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이 논쟁에만 초점을 맞춘 글로는 김시태, 윤여탁 등의 글이 있다.
이제 기교주의 논쟁을 논자별로 세 측면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오래 전에 예술은 오늘날 ‘기술’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미적인 의미로써의 예술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예술가들은 여러 가지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는데, 인간의 신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부분이나 인간의 성에 관련된 예술작품 등도 함께
심지어는 금빛이라는 그 말에서 우리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들판을 연상하기까지 한다.황소의 황과 금빛의 금은 무의식적으로 두 이미지를 연결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더구나 황소도 그냥 황소가 아니라 얼룩백이 황소라고 되어 있다.이렇게 황소울음소리는 이중 삼중으로 시각적 장
심학(心學)은 양명학의 선구가 되었다.
왕수인은 저장 성[浙江省] 위야오 현[餘姚縣]에서 태어났으며, 젊어서는 많은 정신적 편력이 있었다. 그는 용장(龍場)으로 귀양가서 "성인의 도는 나의 본성만으로 스스로 넉넉하다. 따라서 밖으로 찾을 것이 아니다"라고 자각하게 되었다. 또 주자의 즉물궁리(
심학(心學)은 양명학의 선구가 되었다. 왕수인은 저장 성[浙江省] 위야오 현[餘姚縣]에서 태어났으며, 젊어서는 많은 정신적 편력이 있었다. 그는 용장(龍場)으로 귀양가서 "성인의 도는 나의 본성만으로 스스로 넉넉하다. 따라서 밖으로 찾을 것이 아니다"라고 자각하게 되었다. 또 주자의 즉물궁리(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