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마를 방문하는 ‘역지통신(易地通信)’ 의 형태였다. 또 국서교환도 도주(島主) 저택에서 양국의 관리 사이에 이루어진 이주 이례적인 통신사였다.
이전의 통신사는 양국의 평화를 증진시켜 나가면서 우호관계 성립의 발판을 마련했다. 초기에는 양국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성립되었지만, 왕래
1)통신사의 정의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는 '일본에 파견된 조선 국사의 명칭',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일본 바쿠후[幕府]의 쇼군에게 보낸 공식 사절단‘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통신사의 여러 취지는 무로마치[室町] 쇼군[将軍]으로부터의 사절과 국서에 대한 답례로서 1375년에 아시
번의 의향을 언제나 배려할 필요가 있어, 일본국 전체의 입장에서 개혁을 행하는데 항상 곤란이 따름.
국내의 통일은 급선무
이에 신정부의 중심이 되어 있던 사쓰마, 조슈, 도사, 히젠(사가현∙나가사키현)의 네 번(藩)은
1869(메이지[明治]2)년 번주(藩主)가 자청하여 그 영토(판[版])와 인민(적[
1. 에도막부의 시대
정권의 본거지가 에도였으므로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도쿠가와의 성을 따라 도쿠가와막부라고도 한다. 그 지배체제는 가마쿠라·무로마치막부에 비하여 강력하였으며 전국의 통치권을 장악, 구게·지샤 세력을 통제하고 각처에 할거하는 다이묘들을 신속시켜 '막번체제'라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