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연대론의 대두
1874년(명치 7) 일본에서는 일부 정객들이 민권의원 설립 건백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민선의원 설립에 대한 유세를 시작하면서 자유민권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취지는 국권 확충에 앞서 민권의 확립을 도모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 운동이 발전되면서 1881년 자유당이라고 하는
(1) 의열투쟁의 시도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는 특별히 배일사상을 갖고 있지 않던 안중근은 전쟁 과정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지배 야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다. 일제가 러일전쟁을 도발한 것이 결코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한국을 병합하여 대륙침략의 발
아시아연대론의 주된 공격 대상으로 러시아를 지목하게 만들었다.
일본은 조선과 수호조약을 체결한 후 기회 있을 때마다 러시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고, 또 조선의 군비에 대해서도 잦은 충고를 하였다. 수신사 김기수의 기록을 보면 일본의 이노우에 가오루는 두 번에 걸쳐 제정러시아의
근대 일본의 역사 과정에서 일본의 아시아 인식은 일본의 대외 정책을 규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근대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기본 인식의 구조는 '인종'과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검토가 가능하다. 인종적으로는 아시아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가지고서 저 너머 백인의 문명세계를 동경하고
1.1. 동아시아와 중국의 민족, 그리고 민족주의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동북공정의 문제는 현상적으로는 21세기 이후의 최근의 문제이지만, 비단 최근의 문제만으로 바라볼 수 없다. 역사 왜곡에 관한 문제는 근대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그 과정 속에서 현재의 동북공정이 발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