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연구』, 사계절출판사, 2000, Pp.51~52.
고구려에서도 씨름이 장의행사의 일환으로 행해졌을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한다. 각저총 벽화의 씨름과 주변제재를 살펴보면 씨름은 현실세계에서 행해지는 놀이가 아니며, 새로운 세계의 입구에서 행해지는 의미 깊은 행사라고 한다. 씨름이나 수박희는
아프라시압벽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두 번째 큰 도시인 사마르칸드에는 아프라시압이라고 불리는 언덕이 있다. 이 언덕은 기원전 6세기부터 1220년까지 사마르칸드 지역의 중심지였던 지역이었다. 1220년 몽골의 침략으로 아프라시압이 함락되면서 화려했던 시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아프라시압 언덕에서의 출토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으며, 발굴당시의 모습을 재현해두고 있다.
수많은 전시물 중 최대의 볼거리는 역시 7세기 영주의 궁전(왕의 별궁)에서 발견된 왕의 사절도 벽화일 것이다. 7세기 바흐만왕의 즉위식에 이곳을 방문한 외국 사절단의 모습을 그린 벽화로서, 특히 벽에
벽화 속에서 유물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어 당시 고구려의 세력은 한반도 남부에까지 미쳤던 것으로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중요한 것으로 평남 덕흥리의 고분 벽화를 들 수 있다. 고구려의 ‘진’이란 사람의 묘인데, 벽화의 모습은 유주 자사로 재직할 당시 13명의 태수로부터 업무보
Ⅰ. 서 론
사람이 생존하는 데 있어 가장 필수불가결한 것은 의식주라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옷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옷이 없으면 추위로부터 피할 수 없고 더 나아가 품위를 유지할 수 없으며, 위엄도 서질 않는다. 상대시대인 삼국시대의 복식은 그의 신분과 직위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