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상해와 남경이 위기에 처한 가운데 중국 국민정부는 1937년 11월 17일 수도를 남경에서 중경으로 천도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장개석을 비롯한 중국 군.정의 수뇌부는 무한(무창.한구)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항전체제를 갖추었다. 그들은 특히 민중을 항일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1938년 2월
Ⅰ. 서론
임시정부에 대한 연구는 80년대 후반의 성과를 대체로 발전.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국사편찬위원회.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 정부 기관이 자료집.논문집을 계속해서 발간한 것과 중국학자들의 자료 공급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정부 기관으로. 우선 국
Ⅰ. 서론
국공합작체제는 1940년 봄을 고비로 현저히 흔들렸고 한인 좌파 세력의 정치적 배경이었던 중국군사위원회 정치부의 성격은 이때 크게 변화하였다. 1938년 10월 말 무한을 함락시킨 일본군이 더 이상 대규모 진공을 하지 않게 되자 중일전쟁은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반면 국공 간의 단결
1.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 배경
① 국제정세의 변화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고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 1910년대 나라 안팎에서는 해방 후 정식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잠정간의 정부 역할을 하면서 민족해방운동을 지휘할 최고기관으로 임시정부를 수립하려는 운동을 벌
Ⅰ. 서론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 이하 임시정부 또는 임정)는 1919년 4월 수립되어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먼 이국땅에서 숱한 역경 속에서도 27년간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해방 뒤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개인자격으로 귀국함으로써 임시정부는 건국 임무를 완수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