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두칠성의 정기를 안고 태어나다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가슴과 배에 북두칠성 모양의 흑점이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이 감응한다하여 아명이 응칠(應七)이었다. 아버지 안태훈은 호방한 성품에 개화문명을 일찍부터 받아들인 선각자였으
안중근의사의 연혁
안중근은 조선 왕조 말엽인 1879년 9월2일 황해도 해주읍 광석 동에서 태어났다. 안중근은 고려말의 이름난 유학자 안 유의 후손으로 할아버지 안인수는 진해 현감을 지냈으며 집안이 넉넉해서 해주 에서 알아주는 큰 부자였다.
아버지 안태훈은 어려서부터 재주와 지혜가 남달리
(1) 의열투쟁의 시도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는 특별히 배일사상을 갖고 있지 않던 안중근은 전쟁 과정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지배 야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다. 일제가 러일전쟁을 도발한 것이 결코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한국을 병합하여 대륙침략의 발
1. 머리말
안중근은 “세계의 대세를 짐작하고 해외에서 신호읍을 하는 자 어찌 무모하게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자가 있을 것인가. 이등박문의 정책이 동양평화에 지대한 해를 끼치는 일에 一身 一家를 돌볼 여지가 없이 결행한 것”이라며 의거의 명분과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에 동학농민운동의 진압군으로 아버지를 따라 참여한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과 이후 강제병합 과정을 지켜보며 교육사업 등 계몽운동만으로는 역부족을 느끼고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마침 을사늑약과 강제병합의 원흉으로 조선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