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까지) 이후 소작권 이동 반대투쟁
4. 전남 무안군 암태도 소작쟁의
1923년 가을 암태도 소작회 결성, 소작료 4할 요구 쟁의 전개. 1924년3얼-7월 지주와 경찰을 상대로 한 농민투쟁이 전개, 동아일보의 지원과 전국 노동, 농민, 청년단체의 지원활동, 일제 경찰의 중재로 소작료 4할 획득하였다.
Ⅰ. 서 언
일제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정책 수립과 그 시행에 있어서 기본이 된 것은 한반도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이었다. 이것의 실시 이후 소작농의 계층분화가 가속화되고 소작농의 생활고는 더해갔다. 더구나 일제하의 소작관계는 고율(高率)의 소작료, 불안정한 소작권 지주의 횡포
암태도로 대표되는 20년대 소작쟁의 바람은 조선 민중과 일제 통치당국 사이의 그 같은 힘관계를 배경으로 하고서 일어난 것이다.
암태도의 소작 농민들이 지주 문재철을 상대로 쟁의에 나선 것은 1923년 8월 추수를 앞두고서였다. 서태석 회장이 이끄는 소작회 회원들은 수확량의 7~8할에 이르던 소작
Ⅰ. 서론 - 일제 하 한반도의 상황
Ⅱ. 본론 - 암태도 소작쟁의와 원산 총파업 사건
1. 암태도 소작쟁의
2. 원산 총파업 사건
Ⅲ. 결론 - 평가
Ⅰ. 서론 - 일제 하 한반도의 상황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완전히 강탈한 일제는, 1910년대에 약 10년 간 소위 ‘무단 통치’로 한